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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산면 순교자들
박성식 님의 글입니다. 2009-02-06 06:22:29, 조회 : 1,336, 추천 :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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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믿음을 지킨 믿음의 선배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초대교회와 중세에 많은 사람들이 순교 했다고 들엇다. 정말 우리는 감당할수없을 만큼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로만 들렸다.   선교는 곧 순교라고도한다

그러나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만 드리던 순교가 그리 멀지 않은 시절에 나의 생활주변, 나의 가족 주위에서도  일어났던 사건임을 알게 되엇다. 이글을 쓰면서 우리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것과 ,  순교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의 고향은 광주지만 부모님 고향이 영광 염산면 이라서  어릴적 시골에갈때마다 동네앞  수문에서 놀았던기억이있다. 바닷가엿고  배들이 정박하고 물론 바람으로 가는 돛대가달린  돛대가 배보다 더 큰 정말 크게보이던  배들이 있었다.  거기에 수문이 하나있었는데  . 그수문은  어린 내가 보기에는 무척이나 높았고 무서웟다. 수문을 통해  물이 통과하고 그수문은   밀물 과 썰물 에 따라서 높이가 달라지곤 하엿다 .

그런데 어릴적에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그런데 얼마전 나는 이곳에서 많은 순교자가 이곳에서 수장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중에는 우리 친척 들도 있었고  외 할아버지도 이곳에서   대창에 찔려서 돌아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무려  한교회  77명의 교인들이 공산당에 의해 죽으면서도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내가 믿음을  갖기전 이사건은  그냥 단순한 전쟁중 일어났던 사건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을 갖고보니 이사건은 정말 중요한 신앙의 유산이엇다.
이사건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사실 영광지역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지역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 이유는 6ㆍ25 당시 영광군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그 당시 영광은 전쟁에 대해 전혀 무방비 상태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6ㆍ25  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순박한 시골사람들이라  피난가지도 않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한다리건너면 모두 친척들이다 보니 사이가 좋은 시골 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몰려든 공산군들로부터 많은 희생자를 내게 되엇다.
염산에 진을 친 공산군들은 우선적으로 교회를 폐쇄하였다 한다.. 기독교인들은 공산군의 숙청 대상 1호였기에 기독교인들의 모임 자체를 없앤 것이다.

결국 교인들은 가정에서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피난을 거부한 김방호 목사가 성도들 집을 오고가며 비밀 예배를 집례하였다.

그러던 중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국군과 UN군이 영광 읍내로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이 소식은 숨어서 예배를 드려야 함을 탄복하고 있던 기독청년들에게는 커다란 희소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익청년들과 더불어 만세 환영대회를 준비하고 이를 주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미처 후퇴하지 못했던 공산군들이 이를 분하게 여겨 이를 철저하게 보복하게 되면서 염산교회의 순교가 시작된 것이다.

우선적으로  국군 환영대회를 주도했던 청년들이 붙잡히게 되었다.
. 그들은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부끄러움 없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바라본 교인들은 오히려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다음날부터 공산군은 악에 받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붙잡힌 사람은 노병재 집사였다. 그들은 노 집사를 바닷가 수문 뚝방까지 끌고 가 수장시키려하자, 찬송을 부르며  순교하였다. 이후 노병재 집사의 부인 장일영 집사와 그 어머니   그리고 네 살 박이 막내 아들까지 9명이 순교를 당했다.

몇일후에는   염산교회의 장로인  허상 장로와 그 부인이 순교를 당했다. 공산군은 허 장로 부부를 봉덕산 골짜기로 끌고 와 매를 때리고 죽창으로 찔러 죽였지만, 순교를 당하는 허상 장로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후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염산교회 교인들은 수문  앞에서 무참히 살해되어 순교의 길을 가게 되었다.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의 삼촌은 이사건에 대해  이렇게 당시를 말해주곤 하엿다..
"사람을 1미터 씩 거리를 두고 묶었는데 엄지손가락을 십자가 모양으로 해서 가슴에 꽉 조여 매고 돌도 사람 머리만한 것으로 가슴에 묶어서 그 여러 사람 되는 인원을 뒤에서도 20명이 동원돼 한꺼번에 밀어 버렷다고 한다.…. 남자는 엎어져서 뜨고 여자는 뒤집어져서 떠다니고 온 바다에 시체들이 떠다녔다고
한다.

.

순교 현장인 포구.
당시에 바닷물이 모두 핏빛으로 바뀌어 한참동안 지속되었다 한다.  이후     목사 가족 여덟 식구가 모두 순교를 당하고 교회 집사들  영광 염산교회 교인중  77인이 모두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1951년 2월 24일 수복이되자 교인의 3분의 2가 순교를 당한 염산교회에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모였다. 그들은 땅 속에 묻어두었던 성경책을 꺼내고 마루 광 항아리 속에 숨겨두었던 찬송가를 꺼내었다. 그들은 찬송을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온 성도가 눈물로 찬송하며  결단했다고 한다.  

그들안에 어떤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은 죽음앞에서도 담대할수 잇었을까.  
우리의  신앙의 선배 들이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엿는지   배워야할것 같다 .  우리는 우리의 현실과 상황 가운데 너무나 길들어져 살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한번   믿음 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그분들을 생각 하면서   끝까지 , 마지막 숨을 거둘때까지 믿음 지키며 살아가기를  다짐해본다.
  


















* lwmc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2-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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